코로나를 피해 보츠와나에서 남아공, 카타르, 인천까지.

 보츠와나 파견 계약이 다음 주면 종료된다.
 다 끝났다. 허무하게 마무리 되었다.


 2월까지만 해도 보츠와나는 코로나로부터 안전하겠다 싶었는데, 3월부터 남아공에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4월이 되어서는 보츠와나에도 확진자가 20여명 발생했다.
 
 교육원에서는 일찌감치 조기 귀국을 권고하였는데,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처음엔 잔류를 신청했다. 4월부터는 보츠와나도 국가봉쇄를 하였고 가까운 마트를 가려해도 군인과 경찰의 확인이 필요했다. 학교가 문을 닫은 것은 물론이다. 예정보다 2주 일찍 방학을 실시하고, 개학을 무기한 연기시켰다. 파견사유가 소멸된 것이다.

 더 이상 남아있을 근거가 사라졌고, 일시 귀국을 신청했다. 그 후로는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우선은 국제 항공선이 거의 모두 사라진 터였고, 보츠와나 및 남아공 모두 락다운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교육원과 대사관, 한인회 등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필요한 허가들을 얻어주었고 교통편을 마련해주었다. 덕분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 내가 한거라고는 귀국 신청서를 제출한 게 전부다. 그 뒤로는 가라는 대로,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새 한국에 도착해 있게 되었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현할 기회를 놓칠만큼 상황은 엄했다. 보츠와나-남아공 간 육로 국경은 사실상 폐쇄되어 있었고, 우리 일행만이 유일한 출국자인 것 처럼 보였다. 대사관 직원들께서 차량을 빌려 직접 마중까지 나와주셨고, 공항까지 이동하는 모든 길에서 현지 경찰의 지원을 받았다. 


 몰레뽈롤레 집에서 국경까지는 한 시간 남짓한 길인데, 여기까지 가는데도 이동 허가증이 필요했다. 현지 교육부 담당자의 도움으로 지역 교육청에서 특별 허가증을 받았고, 관용차를 타고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마당을 나서면서까지도 나는 집주인에게 여차하면 내일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요 라고 말하며 절반의 작별인사를 했었다. 정말로 비행기가 뜰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카타르 항공사에서 특별 항공편을 열었는데, 이 비행기 외에는 요하네스버그의 모든 국제선이 취소되어 있었다. 대사관에서 전세기를 추진하려는 듯 했으나 귀국을 희망하는 교민들의 수가 적었는지 무산되었다고 들었다. 게다가 우리 비행기 바로 직전 비행기도 예상치 못하게 취소되는 등 당일까지도 출국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상황은 불안정했다. 그러니 수도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별했다.

 보츠와나에서 공항까지는 6시간이면 갈 거리지만, 공항까지 가는데 하루를 다 썼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공항에 도착한 것은 해가 완전히 진 후 였다. 카타르 대사관에 들러 무언가 절차를 한번 더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프레토리아에 있는 대사관 앞에 모든 탑승객들이 모였고, 전용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탑승한 후 8시간 뒤 카타르 도하 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선 대기 시간이 무려 20시간이었다. 이번 특별 항공편은 모두 대기시간이 20시간이었다. 남아프리카 뿐 아니라 다른 중동 국가나 유럽 등에서 출발한 탑승객을 모두 태우기 위해 저렇게 무지막지한 대기 시간을 둔 것 같다.
 아침에 도하에 도착해서는 우리 밖에 없었는데, 새벽이 되어 탑승 시간이 가까워서는 훨씬 많은 대기자들이 보였다. 물론 많다는 게 200명도 안 되었다. 크고 화려한 도하 공항이 텅텅 빈 모습은 일전의 상식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광경이었다.


 다시 8시간 뒤 인천에 도착했다.
 역시 한국은 일을 참 잘 한다. 검진부터 입국 심사까지 절차로 따지면 복잡한 일인데, 순식간에 끝났다. 4명의 파견자들은 각지로 흩어졌는데, 각자 전용 버스 혹은 기차를 타고 헤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시에서 운영하는 격리 시설에 들어와 있다. 2주의 자가격리 중 절반이 지났다. 따지고 보면 보츠와나에 있을 때부터 집에만 있었으니 근 두달 째 자가격리 하는 셈이다. 
 정말이지 답답하다. 
 몸이 굳고, 소화가 안 된다. 답답하고, 에너지를 소모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생산적인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에 몰레뽈롤레에서부터 유튜브를 보며 홈트레이닝을 하고 영어 공부를 했다. 여기와서는 한국사 시험이나 봐야지 라는 생각에 한국사 강의도 보고 있다. 영양가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인데, 짜증과 화가 치미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격리가 끝나면 운동화를 새로 사고 달리기부터 해야겠다. 자전거도 타고, 여행도 가야지.


 작년을 돌이켜보면 꼬박꼬박 출근도 하고,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나름은 바쁘게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실제 출근한 기간이 두달이나 될까. 컴퓨터실 치우고 동료교사들로부터 협조를 구하는데만 한달을 썼으니 수업은 한달도 못했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해다. 남은 6개월을 아껴쓰도록 하여야 하겠다.
코로나를 피해 보츠와나에서 남아공, 카타르, 인천까지. 코로나를 피해 보츠와나에서 남아공, 카타르, 인천까지. Reviewed by Kopano on 5월 23, 2020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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