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츠와나에서 교원해외파견 6개월 차 후기, 관심있는 선생님께 드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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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손을 거치기 전 원문을 바탕으로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벌써 6개월이 지났다니.

 제목을 '보츠와나에서의 고군분투기' 라고 짓고 글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다. 홀로이 외롭지도 않으며, 어떤 사명감에 사로잡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태평하게 살이나 찌우고 있다. '교육 봉사'라는 목적 아래 파견을 나온 것은 맞지만 봉사에는 반드시 희생과 고난이 뒤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보수를 받아가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큰 집에서, 잘 챙겨 먹으며, 새로 사귄 친구들과, 만족하며 살고 있다.


요 며칠 학교가 공사중이라 70명 데리고 수업 중이다.


1. 어떻게 파견을 나오게 되었는지?
 작년까지는 대전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국립국제교육원을 통해 파견을 나와 있다. 간단한 서류 심사와 면접 등을 통해 선발되었고, 지난 1월에 도착했다. 사실은 재작년에도 지원서를 냈었다가 떨어졌고, 작년에 재수를 해서 기회를 얻었다.
 재작년에는 대학원을 힘겹게 졸업한 나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지원했었다. 잠도 많이 자고 싶었고, 쉬고 싶었다. 머릿 속에 떠다니던 통계치들은 당분간 잊고 싶었다. 아마도 이런 욕심이 면접관들에게도 비쳤는지 그 해에는 떨어졌다.
 복직 후 2학년 담임으로, 6학년 담임으로 근무를 하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지원했다. 삐딱한 지원 동기가 그 사이 얼마나 착실해졌겠냐마는 적어도 지금은 '받은 만큼 일 하자'를 모토로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다.

2.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면 보츠와나로
 인터넷에서 보츠와나를 찾아보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들이 있다. 아프리카 국가 중 몇 안 되게 잘 사는 나라, 다이아몬드 채굴로 이뤄낸 경제 성장, 국가 청렴도가 한국보다도 높아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정착, 에이즈 감염률 세계 최고, 칼라하리 사막, 오카방고 삼각주, 초베 국립공원, 사파리, 코끼리 등 ……. 막상 와서 살아보니 과연 살기 좋은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하면 오지부터 먼저 떠올리지만, 여기도 도로가 잘 깔려있고 고층 빌딩도 있다. 쇼핑몰이나 식당 같은 편의 시설도 적당히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영화관도 있고, 어벤져스 같은 인기작은 첫날엔 모두 매진될 정도다.
서울에 비할 바야 아니겠지만 야경도 있다.

Room 50two 라는 호텔 식당에서 본 모습이다.

 수도 가보로네는 한국으로 치면 지방의 중소도시 정도의 규모다. 각 정부 부처의 청사들은 멋지게 서 있고, 출퇴근 시간에는 차가 막힌다. 월급 날(매월 25일) 쇼핑몰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ATM 앞에는 20명씩 줄을 서고, 식당엔 자리가 꽉 찬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사는 몰레폴롤레 같은 시골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마트엔 쇼핑하는 사람들로 평소보다 붐비고, 술을 파는 가게엔 평소보다 다섯 배는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특히, 금요일 밤이면, 월급날에 가깝고 아니고를 떠나서, 시끌시끌하게 음악을 틀어놓고 브라이와 술을 즐긴다. 브라이는 우리네가 삼겹살을 구워먹듯 이들이 바비큐를 해먹는 것을 말한다.

 며칠 전 까지는 방학이어서 카사네와 마운에 다녀왔었다. 이쪽은 최근 보츠와나 정부에서 가장 신경 쓰고 개발 중인 관광단지라고 한다. 3성급 혹은 4성급 호텔과 롯지가 여럿 있고, 관광지 답게 훨씬 다양한 메뉴를 갖춘 식당들도 있었다. 수도권은 느긋하게 살기 좋은 동네라면 이쪽은 복작복작 재밌게 살 수 있는 동네처럼 보였다. 얼룩말과 기린, 코끼리 등 온갖 동물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튜브로도 올려 두었다.


 반면, 내가 사는 몰레폴롤레는 살기 좋은 동네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막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건조한 지역이라 키 큰 아름드리 나무는 보기 어렵고 키 작고 가시가 돋힌 부시들만 드문드문 보인다.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자면 도로에 깨진 곳이 많아 요리조리 피해가며 운전을 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영구 단수 지역이라 물이 안 나오는 집이 많다. 애초에 집을 지을 때 수도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무 중인 학교도 물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볼라치면 물탱크에서 물을 길러 변기에 들이부어야만 한다. 참 다행인 건 몰레폴롤레 모든 지역이 이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병원이나 쇼핑몰, 식당, 관공서 등에는 수도가 당연히 설치되어 있고 물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그리고 정말이지 큰 복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집에도 물이 잘 나온다는 점이다. 10분만 걸어가도 그 쪽에는 수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3. 보츠와나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파견 나와서 하는 일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학업 부진과의 싸움'이다. 근무 중인 학교에는 부진한 친구들이 참 많다. 이를 테면 사칙 연산의 순서를 알지 못해 15x5-5+3 을 75-(5+3)으로 계산하는 기적의 계산법을 보여주는 친구가 있었다. 아니, 친구들이 있었다. 워낙 완강하게 주장하길래 순간 수학에도 문화차가 있는가? 라고 혼란을 겪을 정도였다. 반복하여 설명을 하고, 교과서를 들이밀고 또 다른 참고 자료까지 제시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았다. 도대체 고집들은 왜 그렇게 센 건지. 처음 의견 충돌을 일으킨 친구와는 2시간 넘게 설전을 벌여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까지도 설득하기 까지는 3일을 소모해야만 했다. 다행이 몇몇 똘똘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현지어로 설명을 부탁해가며, 설득해 나갈 수 있었다. 수학을 설명이 아닌 설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놀랍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친구들의 정체는 선생님이라는 점이다.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교감과 교장도 포함되어 있다.
시설이 열악한 건 사실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물의 순환 과정에서 승화도 일어난다는 점, 시험관에 쇳조각을 넣고 쇳조각이 잠길 만큼 물을 넣으면 기름으로 밀봉을 한다 해도, 이미 물 속에 산소가 녹아 있으므로 쇳조각에는 녹이 슨다는 점 등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우 일관되게 동일한 오개념을 보여 교사 양성 과정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이다. 또 이 고집쟁이들은 명왕성은 2006년 부터 행성이 아니라는 점을 뉴스 기사와 책을 근거로 보여줘도 믿질 않았다. 10년 가까이 어느 누구도 교재 연구를 안 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교사들이 이러한데 학생들의 성취도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5학년 학생들이 네 자리 숫자를 매끄럽게 읽지 못하며, 325+658 같은 세 자리 수의 덧셈에서 조차 정답률이 20%를 넘지 못한다. 분수는, 아 정말이지 분수는 절망이다. 이 같은 부진은 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우리 학교가 지역 내 22개 학교 중 21위를 했다지만 대부분의 다른 학교도 합격률이 10%를 넘지 못했다. 참고로 문제의 절반을 넘게 맞추어야 합격으로 간주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까? 한 학기를 혼란과 놀라움, 실망으로 보냈고 여전히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영양가 있는 일을 효과적으로 하고 싶었다. 현재 한 반에 30명씩 두 개 반을 지도하고 있지만 이 60명을 잘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더 효과적인 일을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학교장에게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교사부터 오개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학교장에게 요청해 교직원을 불러 모아 연수를 했다. 덧셈과 뺄셈은 같은 지위를 갖기 때문에 앞에서 부터 순서대로 계산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고,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지위가 떨어진 까닭을 설명 하는 등 연수를 진행했다. 현지 교사들은 놀라울 만큼 무지하며 완고했다. 1학기말 시험에 출제된 문제를 해설하고 오개념을 교정하기 까지는 꼬박 3일이 걸렸다. 그 3일 이후로도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는 교사들도 많았다.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오개념을 심어준 것이며, 앞으로도 얼마나 고집스럽게 이를 반복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답답했다.
 이걸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출제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미쳤다. 학기말 문제는 지역 교육청에서 제작해 각 학교로 배부하는데, 그 학기말 문제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와 오개념이 녹아 있었다. 오탈자는 실수라고 치지만 대놓고 오개념을 조장하는 문제들도 너무나 많았다. 2학기에 출제 위원, 아니면 적어도 검토 위원으로 참여를 하면 시험 문제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험지로 백 여 개의 학교, 수 천 명의 학생이 시험을 치룬다는 것을 생각하면 꼭 시도해 볼 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낯선 외국인에게 평가권을 나누어 줄지는 의문이다. 뜻대로 출제 위원으로 참여를 한다 해도 또 다시 그들과 설전을 벌이고 지리한 설명을 반복하여야 겠지만 시도해봄직한 일이다. 학교장에게 이 같은 계획을 설명했다. 그리고 중앙 교육부에 이 사업 담당자에게도 메일을 보냈다. 그게 지난 주다. 학교장께선 교육청에 연락을 넣어주었고, 중앙 교육부에서는 아직 어떠한 지침을 주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해줘서 고맙고 연락해 보겠다는 답변만 보냈다. 2학기에는 시험지를 검토하며 한숨 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가장 심각한 건 인적 자원의 부재다. 학기말 고사 50개 중 14개가 잘못되었다. 저걸 만든 사람은 현지 교사들과 교감들이고.


4. 보츠와나에서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많이 얻었다. 보수도 파견 전보다 많고, 한국이라면 아마 평생 가져보지 못 할 마당이 있는 큰 집에서 살고 있으며, 재롱 떠는 강아지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처럼 빠듯하고 바쁘게 살지 않는 것이 좋다. 늦잠을 자고는 머리를 안 감고 출근한 적이 몇 번 있을 만큼, 셔츠를 다려 입지 않은 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무신경하게 살 수 있어서 좋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이 지루한 책을 읽을 만큼 따분한 일상도 정말 고맙다. 세상에, 얼마나 지루했으면 저런 책에 손을 대었겠나. 대학원 다닐 때 읽다만 논문들도 다시 꺼내어 읽어 볼 만큼의 여유가 만족스럽다.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을 새로 사귀었고, 수 년, 수십 년 째 정착해 살고 계시는 한인들도 자주 만날 수 있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 한국이었으면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불려다녔겠지만 여기선 그럴 일이 없어 편하기도 하다. 간간이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잘 사냐며 안부를 묻는 것 만으로 1~2년은 견딜 수 있을 듯 하다.
 불만이 있다면 음식이 맛이 없다는 점이다. 수도가 아니면 식당도 별로 없고, 그나마 식당에서 파는 음식의 질도 썩 좋지 못하다. 입맛의 차이일 수 있겠지만, 서툰 요리사가 덜 신선한 재료로 적은 노력을 들여 만드는 것이 확실하다. 심지어는 3성 호텔 식당도 별로였고, KFC나 피자헛 같은 글로벌 체인점도 한국의 것에 비하면 만족도가 떨어진다. 그 덕에 매일 요리를 하게 되었고, 실력이 많이 늘었다. 소고기는 1Kg에 8천원, 오렌지 1개 300원, 아보카도 1개 500원 밖에 안 한다. 스테이크도 굽고, 닭도 튀겨보고, 이것 저것 요리하며 잘 먹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뭐 먹고 사나요? 탕수육이요.





5. 이 사업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관광객 같은 마음 가짐으로 오시지는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교육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파견국들이 개발도상국인 만큼 학교나 교육 기관이 한국의 그것처럼 체계적이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편하게 가르치고자 하면 얼마든지 편하게 가르칠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잠깐 1년만 가르치다 떠날 일이니 대충 가르쳐도 될 것 같고, 어차피 부진아들이이니 수업 좀 대충 한다고 티도 안 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체계가 안 잡힌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에게는 대전에서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재량권이 생겼습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보츠와나는 우리들에게 매우 협조적입니다. 나에게 어떤 계획이 있으니 도와 달라하면 호의적으로 도와줍니다. 고민해 볼 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수학을 지도하는 것 말고, 위생이나 보건 교육에도 관심이 생겨 숟가락 보급과 손씻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봉사 정신 같이 고귀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받은 만큼은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잠깐 머무르다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무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점 숙지하시고 지원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보츠와나에서 교원해외파견 6개월 차 후기, 관심있는 선생님께 드리는 말씀 보츠와나에서 교원해외파견 6개월 차 후기, 관심있는 선생님께 드리는 말씀 Reviewed by Kopano on 7월 04, 2019 Rating: 5

댓글 5개:

  1. 저렇게 고생해서 참여한 시험지는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는 슬픈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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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흥미있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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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흥미있게 읽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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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파견경험하신 선생님들의 글을 찾아 헤맸는데 여기서 처음 보네요! 그런데 이렇게 세세하고 꾸준히 써놓으시다니, 파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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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뜻하는 바 결실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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