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츠와나에서 교육의 힘을 보았다.

 보츠와나 내 초등 학교에서 근무하며 '좋은 것'을 별로 보지 못 했다.

 학교는 열악했다. 교실은 다 허물어져 가는 것 같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물건이 드물었다. 컴퓨터를 활용한 수업은 고사하고 칠판도 엉망이라 분필로 글씨를 쓰는 일도 까다로웠다. 판서를 하고 나면 손끝이 아렸다. 손톱을 깨먹기도 여러번 했다.
 2년 차에는 컴퓨터를 가르치고 싶어서 담당자에게 시설이 갖추어진 학교로 보내달라고 엄청 졸랐다. 결국엔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컴퓨터는 있기는 했지만 부팅이 제대로 되는 건 30대 중 한 두대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50대 가까이 되는 윈도 태블릿이 있었지만 교직원 중 아무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창고에 자물쇠에 채워진 채 잠자고 있었고, 이걸 꺼내서 수업 할 수 있게 만드는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컴퓨터실을 꾸미고 태블릿을 정리하기까지 한달 가까이 소모했다.
 컴퓨터를 가르칠 교사도 없었다. 교사부터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낮았기 때문. 컴퓨터 같은 IT 기기에 대한 이해만 늦었다면 다행일 것이다. 교사들은 종종 자기가 가르치는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에 대해서도 놀라울 만큼 낮은 수준의 이해를 보였다. 오개념으로 가득했고, 조금만 캐물어도 이해의 폭이 낮음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교사가 사칙 연산을 못하고 분수의 덧셈을 못하는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교사들은 무능했고, 열심히 가르치지도 않았다. 제멋대로 수업을 빠졌다. 교사가 없을 때를 대비한 보결 시스템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려웠다. 아까도 얘기했듯 오개념을 비롯해 낮은 수준의 내용 지식을 생각해보면 고등 교육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어보인다. 수업 중간에도 누군가 교실에 방문하면 밑도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교육 과정 연구를 하기는 하는 것일까, 더 잘 가르치기 위한 노력을 본 적이 없다. 교사 양성 과정을 마친 후 자격 제도나 연수 제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가정에서는 자녀 교육에 무관심했다. 분명 의무 교육일 것인데 결석률이 상당히 높았다.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 결석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기타 알 수 없는 이유로 장기 결석의 비중도 높다. TIMSS 자료에 의하면 결석 및 지각률이 TIMSS 참여 국 중 최고 수준으로 높다. 한국이 병적으로 개근 비율이 높은 것과 비교된다. 가정 내 체벌의 빈도도 높은 것으로 종종 보고된다만 눈으로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다.
 숙제를 내 주면 해 오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어린이 다운 어린이는 숙제를 스스로 하기 어려워한다. 마땅히 가정의 지도와 관심이 필요한 법인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것 같았다. 숙제 내기를 몇번 하고는 이어나가기 어려움을 확인하고는 포기하였다.
 부모의 교육 수준 또한 낮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다. 하지만 학교 및 공공기관에서는 영어가 공용어로 통하니 수업을 알아듣기도 어렵고 시험이라도 볼라치면 읽지도 못하기 때문에 점수가 바닥을 친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낮은 부모는 대체로 학업의 중요성에 대해 간과하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계층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공부를 잘 하는 것이데(이견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이것에 도전하질 않는다.

 나아가 학교를 넘어선 수준의 제도에서도 문제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교사 양성 시스템 부터 의심스럽고, 교육청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단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사례는 출제위원들이었다. 매학기 기말고사를 출제하기 위해 각 지역 각 학교 교감급 교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문제지를 제작한다. 여기에 참여해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비효율적이고 한심했다. 누구도 성실히 근무하지 않았고, 출제된 문항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했다. 파견 기간 중 가장 답답하고 한심했던 순간이었다.
 게다가 교육과정은 도대체 언제 개편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개정된 교육과정도 아닌 10년 전 개정 전 교육과정을 근거로 시험문제를 만들질 않나 화가 뻗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학생들은 공부를 지지리도 못 한다. 1/2 + 1/4와 같이 단순한 분수의 계산을 1년을 가르쳤는데, 결국엔 실패했다. 이 친구들을 탓해서 무엇할까. 어른들의 잘못인 것을. 내가 더 훌륭한 교사였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나의 잘잘못을 논하기 이전에 이런 친구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학습 결손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참 못나고 비겁한 결론이지만 오히려 보츠와나에서 교육의 힘을 보았다. 교육의 결핍이 어떠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고 잘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학습자의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타산지석이라 해야할까?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를 배우고 왔다. 이렇게 밖에 얘기하지 못해 보츠와나 동료교사들과 그곳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직업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교육인 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생각이 없었던 탓에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보고 싶었다. 보츠와나에서는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볼 수 없었다. 대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보았다. 뜻한 바를 온전히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나름 도움이 될 경험이리라 믿는다.


Kutlwano 초등학교는 많은 깨달음을 준 공간이었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고, 앞으로도 공부를 놓지 않기를 바란다.


보츠와나에서 교육의 힘을 보았다. 보츠와나에서 교육의 힘을 보았다. Reviewed by Kopano on 6월 20, 2020 Ratin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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